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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


무엇때문인지

나는 요새 나를 내안에 가둔다.

꼬여있는 글들은 몸속을 맴돌며

나를 곁눈질하고 나를 구속한다.

 

요즘 알바를 하고 있다.

한 한달쯤 됬을려나,

카페집같은 분위기에 파스타집이다.

혼자서 손님을 맞고 주문받고 서빙.

막노동에 비하면 정말 간단한 일들이다.

하지만 어느 노동이나 노동의 범주안에서는

여차 차이밖에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막노동이 육체적인 고통이 크다면,

이런 알바들은 정신적 고통이 크다는 것을...

사람을 대하는게 이렇게 힘들수가.

하지만 직면해 있는 상황을 눈감을 순 없다.

엉성하게해도 나아가야 한다.

처음엔 손도떨고, 어떻게 해야하나

괜시리 슬픈눈으로 바뀌곤 했다.

이제는 좀 나아진 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그리고 대화하며 교제하는 곳에서

나는 '그리고 사람'이 되어 그들과 함께 한다.

 

그들의 대화에는 나의 전제가 들어있지 않아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그 대화는 순수하다.

그래서 좋다.

때로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까지 털어놓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오기도 하고,

아직 어색한 남녀가 와서 서로의 흥미를 조금씩 쏟아놓고 가기도 한다.

그리고 아빠 엄마 형 동생 이렇게 가족들이 와서 잔잔한 대화를 나누고 가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재밌는건 이들의 고민들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주워들으면서 한 번 씩 나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내가 고민했던 생각들. 한때 그것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던지는 단 한마디 충고로 '그리고 사람'에게도 그 충격이 전달된걸까.

그들의 비워진 물컵을 보며 채워줘야지 했던 내 생각의 주전자는

어느새 텅 비워버린 마음에 그 주둥이를 들이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대한 매너가 있고,

그 매너 앞에선 행동과 말이 있다.

그런데 행동과 말에 앞서 '있음이냐 없음이냐'(햄릿의 대사 중..)가 있다.

'있음이냐 없음이냐'는 상당히 철학적인 말인데,

내가 말하는 것은 내 임의의 재해석이다.

말이 어렵지만 설명하자면

행동과 말이 있기 전에 있는 어떤 분위기, 눈치(?)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있음이냐 없음이냐'를 경험한다.

몇 년 전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이 사람은 신비한 존재라고 했다.

어떤 대화가 없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당시 난 이것이 사실인지 몰랐다.

적어도 내가 알바를 하기 전까진 말이다.

 

처음에 앞치마를 입고 그들의 앞에 설때면,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가게 들어온 '손님'으로만 느껴졌었다.

사람의 영혼이 담겨져 있다는 그들의 눈동자 조차 보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눈빛을 가지던 나와 상관없었으니까.

그 사람은 그 사람과 함께 온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되고,

난 '그리고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사람이다. 나도 그들도 '사람과 사람, 사람'이다.

이제는 그들의 눈동자를 본다. 그들도 나의 눈동자를 볼 때가 있다.

이 순간은 내가 살면서 느낀 가장 신비한 순간이다.

영화속 주인공의 말처럼, 마음을 읽는 순간이다.

그 일 초도 안되는 순간.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느낌.

좋다 싫다가 제일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한참을 있다보면 관심이 있다 없다 까지도.

 

난 이런 신비한 느낌에 어느새 멍하니 있게 된다.

머릿속은 이미 윈도우 미디어의 그 우주 속을 헤메는 영상처럼..

어느새 사장님은 내 마음을 읽고 있다.

나는 얼른 그 영상을 꺼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렀다.

손님 아니 그 사람도, 함께 온사람도 떠났다. 

사람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가게 한쪽에서 조금은 웃음소리 조금은 들릴듯말듯한 말소리.

아, 그들이 아직 있구나.

난 이미 그 영상속을 헤메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만 둥그런 엘피판을 긋는 바늘소리만 났다.

이 소리는 이미 내 의식 밖에 있었다.

나는 이제 마감을 할 준비를 하며 앞치마를 풀어놓는다.

그리고는 가게를 한바퀴 돌고는 빠르게 넘어가는 필름들을 회상한다.

하나둘 노란 불이 꺼지고, 서서히 내 영상도 꺼져간다.

아주 천천히..

 

문을 닫고 한쪽은 무거운 느낌으로 또 한쪽은 가벼운 느낌으로 발을 딛는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다.

학창시절 똑같은 삶을 산다고 불평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기쁨을 찾았고,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삶이 더 잘된 균형이라고

미학시간에 배우기도 했지만.

한순간에 바뀌는 모험적인 삶을 한번도 경험하지않고

좋아한다는건 역시나 무리인듯 싶다.

나는 마음의 혁명을 좋아하고,

그것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 내 삶에 흥미를 느껴왔던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리고,, 주위의 것들이 선을 긋는다.

필름의 장노출 처럼.

점점 형상이 사라지고 모두들 무의식의 공간처럼 보인다.

나는 또 다시 그 영상을 몰래 켰다.

아니 이번엔 켜진것이지..

한참을 걷는다.

아니 걷는것이 아니다

난 단지 생각하는 것 뿐이다.

 

갑자기 어디선가 돌이 휙하니 날아온다.

모든것이 엉망이 됬다.

생각도 걸음도.

멍했다. 멍하니 움직였다.

아니 멍하니 서있는게 나을뻔했을것을.

그 돌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은 돌이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

그 사람은 사람이었음에도 난 왜 그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했을까.

한 공간을 있었음에도 난 왜 몰랐을까.

적어도 한번이라도 그사람의 눈동자를 보았을 텐데.

아니다 수백번 눈동자를 보아도 모를 수도 있다.

수백번 보았기 때문에 둔해진 감각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사람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난 분명히 그사람의 눈동자를 보았었다.

이상하다.

깊은 관계의 전 단계는 애매한 것이어서

모든것이 복잡해지는 걸까.

그래서 이때만큼은 '신비한 존재'가 되지 못한 걸까.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난 왜 그 사람의 눈동자를 못본척 했을까.

...

 


문득 날아온 돌을 보았는데  

그곳에 그 눈동자가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ByJH






2009년 11월 10일 내 생애 첫 알바를 하고나서 쓴 글이다.

2015년 지금 이 글을 회고하며 보니, 현재 나에게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다.

아마 이 글은 지금의 나에게 쓴 글이 아닐까.

이렇게 간만에 나의 지나간 사진들이나 글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매번 이런 느낌이든다. 

'이것들이 정말 과거에서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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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3. 1. 02:02